이종환 회장은 한국 경제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중요한 기업가이자, 그가 남긴 1조 7000억 원 기부로 사회에 커다란 여운을 남긴 교육 후원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빈손으로 태어났으니 빈손으로 죽겠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살아왔으며, 그 철학을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실천해 대한민국 사회와 교육계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종환 회장의 생애와 그의 철학, 그리고 그가 남긴 유산을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왜 이러한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기업가로서의 성공과 철학의 기초
이종환 회장의 출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전쟁과 분단, 그리고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몸소 겪었습니다. 전쟁 중 학업을 중단하고 학도병으로 징집되었던 경험은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고, 그로 인해 더욱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온 이종환 회장은 정미소를 운영하며 일상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국가가 산업화의 길을 걷는 시점에서 화학공업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1958년, 이종환 회장은 삼영화학공업㈜을 창립했습니다. 초기에는 생활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며 사업을 시작했지만, 점차 포장용 필름과 콘덴서용 필름과 같은 첨단 제품으로 전환하면서 대한민국의 수출 산업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그는 사업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자신의 성공을 개인의 이익에만 쓰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는 철학을 일찍부터 지켜왔습니다. 이 철학은 그의 기부 활동의 기초가 되었으며,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바로 서려면 인재를 키워야 한다”
이종환 회장은 항상 “대한민국이 바로 서려면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직접 겪었던 사회의 변화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그는 교육이야말로 나라를 바로 세우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부를 통해 장학 사업에 전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000년, 이종환 회장은 10억 원의 개인 재산을 출연하여 ‘관정이종환재단’을 설립했습니다. 그 후 재단은 빠르게 성장해 2년 만에 재단의 자산은 3000억 원에 이르렀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장학생을 지원하는 사업을 펼쳤습니다.
관정이종환재단의 장학 사업은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프로그램으로 성장했으며, 재단 설립 이후 수천 명의 장학생들이 재단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종환 회장은 특정 전공이나 배경을 요구하지 않고, 학업 성적과 잠재력을 기준으로 장학생을 선발해왔습니다. 이는 교육의 평등성과 기회를 중시한 그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1조 7000억 원, 기부의 상징
이종환 회장의 기부 활동은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넘어서 그의 인생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는 것을 넘어, 기부 자체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1조 7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사회에 환원한 그의 결정은 한국 사회에서 유례없는 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기부는 매년 수십억 원에서 100억 원에 이르는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수많은 젊은 인재들이 꿈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종환 회장은 단순히 돈을 기부하는 것을 넘어, “돈을 버는 데는 천사처럼 할 수 없어도, 돈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해야 한다”는 그의 행동 철학을 실천했습니다. 그는 성공과 돈을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로 여기지 않았으며, 이를 사회와 나누는 것이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행동으로 옮긴 실천이었습니다.

사회와 교육을 위한 헌신
이종환 회장의 기부는 대한민국의 교육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는 서울대학교에 사재 600억 원을 출연해 국내 최대 규모의 개방형 도서관인 ‘관정도서관’을 설립하는 데 지원했습니다. 이 도서관은 학문과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많은 학생과 연구자들에게 학문의 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종환 회장은 고향 의령에 복지마을을 조성하고, 의병장 곽재우 장군의 사당을 정비하는 등 지역 사회에도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그의 헌신은 단순히 교육 지원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산고등학교에 재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관정관’을 지어 기증하였으며, 마산고장학재단에도 거액의 장학금을 출연했습니다. 또한, 지역 언론 환경 개선과 여론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1999년 <경남도민일보> 창간 주주로도 참여하였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기부 활동은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철학은 교육과 사회 발전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그의 철학, 그리고 마지막 소망
이종환 회장은 자신의 100년 인생을 “정도의 삶을 실천하라”는 한 마디로 요약했습니다. 그는 올바른 길을 걸어가는 것이 결국 승리한다고 믿었으며, 그 믿음을 행동으로 증명해냈습니다. 그의 철학은 단순히 성공을 넘어, 자신의 성공을 사회와 나누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는 “돈을 버는 데는 천사처럼 할 수 없지만,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해야 한다”는 철학을 행동으로 옮겼으며, 이는 그의 삶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이종환 회장의 마지막 소망은 “관정교육재단이 내 사후에도 영속적으로 발전하도록 끝까지 경영 일선에서 계속 뛰다가 하늘이 부르면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사후를 대비한 기부가 아닌, 살아 있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사회에 기여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철학과 행동은 후대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며, 그의 기부와 교육에 대한 헌신은 대한민국 사회와 교육계에 오랫동안 남을 것입니다.

결론
이종환 교육재단장이 남긴 철학과 기부는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넘어서, 그의 인생 전반에 걸친 사회적 책임감과 교육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줍니다. “빈손으로 태어났으니 빈손으로 죽겠다”는 그의 말은, 결국 돈이 아닌 가치와 신념을 남기겠다는 그의 결단을 상징합니다. 이종환 회장은 1조 7000억 원이라는 거액을 기부하며 자신의 삶을 교육과 사회 발전에 바쳤고, 이는 후대에 큰 유산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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